2018.11.17 (Sat) 00:54    
 
홈 > 칼럼/오피니언 > 부아칼럼

TOTAL ARTICLE : 81, TOTAL PAGE : 1 / 5
[444] 늑대와 여우
 용인춘추  | 2013·03·31 11:34 | HIT : 2,485 | VOTE : 433

김기홍

거룩한 사랑은 성스러운 것만은 아니겠지요? 종교적인 것만도 아니겠지요? 저는 한결같은 사랑 또한 거룩한 사랑이라 일컫고 싶습니다. 거룩한 사랑은 늘 가슴 애잔해지지 않던가요? 하지만 그 사랑은 귀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구요. 거룩한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사랑 앞에 온 몸이 오그라들고 맙니다. 사랑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되는 순간 세상 살 맛이 별로 나질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사소한 것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상처주고 오해하고 분노하고 그리고 가슴아파하는 일이 비일 비재합니다. 다들 그렇게 하고 삽디다. 저만 그런 인간인 줄로 착각했지 뭡니까? 별수 없지요. 보잘 것 없는 한 점일 뿐인걸요. 그렇다고 거룩한 사랑을 하지 못하란 법이 있습니까?

사랑은 일방적으로 내가 그저 좋아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였답니다, 상대로 부터 어떤 상처를 받을지언정 내가 좋으니깐 그래서 좋아하니깐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음을 늘 감사만하면 된다고 믿었지 뭡니까? 그런 한결같은 사랑은 거룩하니까요. 변함없는 사랑이라고 인정받고 칭찬 받을 일인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배려 없는 일방통행은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여전히 사랑하는 지를 파악하는 배려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해’ 외치고 또 외치면서 내 사랑은 추호의 흔들림이 없다고 다짐 또 다짐하는 것은 거룩할 수가 없겠단 생각이지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때 나는 혹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고 맹신하는 자신의 집착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사랑이 그저 오가다 우연히 만난 타인들끼리 한 순간 즐기는 그런 유희와 같은 것도 아니잖아요? 잠시 잠깐 욕정에 눈이 어두워 긴 밤을 불태우면서 사랑의 묘미를 만끽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한 순간의 욕정을 풀자고 서론, 본론, 결론 다 떼고 그저 즐기는 그런 것이 사랑이 아니잖아요? 이 세상 여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남자는 다 늑대’라고 하지요. 뭐...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시간의 문제이지 조금만 지나면 ‘여자는 다 여우’란 말이 딱 맞는 말이 되고 말지 않습니까? 동물의 왕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 인간사에 있습니다. 늑대와 여우가 한 몸이 되어 사랑하는 일. 하지만 늑대와 여우의 사랑을 그저 욕정에 눈이 멀어 동물적 본능만을 중시하는 철없는 인간의 작태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요?

사랑의 조건이 그리 까다롭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단순하다고 할 수도 없겠지요? 혹시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 몸과 마음이라는 두 개의 영역을 따로 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육체는 순결을 강요받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마음 따로 몸 따로 그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이 곧 몸인 것이지요. 몸이 곧 마음은 아닐지언정. 마음으로는 이미 허락한 사실을 몸이 자제할 뿐이겠지요. 그렇다고 몸을 먼저 몰아친 후에 마음을 요리하자는 것도 너무 과감한 도전이 아닐까요? 실패의 후유증이 남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품이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품안에서 더없이 행복한 것이 인간이지요. 우리네 옛날 사랑이야기에 머슴과 마님의 사랑 이야기가 회자된 적이 있을 겁니다. 감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마음으로 품고 사랑하던 머슴이 어느 날 마님의 손길을 받고 마님의 포옹을 받고 더 나아가 마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아마도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을. 마치 비련의 벙어리 삼룡이처럼.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받은 노텔담의 곱추 콰지모도처럼. 미녀의 사랑을 받은 야수처럼. 사랑의 행위적 실천으로 내 존재가 과연 어떤 곳에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최대의 행복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하지만 단순히 의학적으로 해석하자면 체내 몰핀이라고 일컫는 엔돌핀 호르몬 때문이라네요. 그럴지언정 그 엔돌핀을 우리 마음대로 쏟아내게 할 수가 없네요. 인위적인 엔돌핀 효과는 대부분 곧바로 중독이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마약중독처럼.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에도 중독이 있음을 두려워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지요.

늑대와 여우의 사랑이 거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칫 중독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거룩한 사랑은 서로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연애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민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성적 행위의 요구에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나의 육신의 매력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그 의심은 몇 차례의 행위 후에 또렷하게 사실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늑대는 새로운 여우를 쫓을 것입니다. 버림받은 여우는 늑대를 한 없이 미워할 것입니다. 그 반대도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보다 자극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사랑의 하모니 행위조차 자극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극에 반응하는 우리의 인체는 적응한다는 사실이고 그 자극의 강도를 바꾸거나 높이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자극으로 만족하는 말초신경계 사랑놀이는 바로 중독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을까요? 계속 갈구하게 됩니다. 자극만 만족되면 족합니다. 서로의 교감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사치일 뿐입니다. 시간이 없을 정도랍니다. 사랑을 하찮게 보기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늑대와 여우의 비극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기승전결을 잘 이해한다면 그런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교감을 통해서 잘 알고 사랑해야할 것입니다. 그런 교감 때문에 똑같은 자극과 반응이 추할 수도 거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늑대와 여우의 만남이 거룩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이지 않을까요? 사랑을 시작한 후 배려가 개입된 늑대와 여우는 더 이상 늑대와 여우가 아닐 것입니다. 단순한 육체적 본능의 충족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진정한 배려가 어떤 것인지를 사랑한 후에 깨닫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낌으로 깨닫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애매모호하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전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 정답 또한 딱 부러지게 ‘바로 이거야’라고 무릎을 탁칠 수 있는 일인가요? 많은 의문을 던져보고 스스로 답을 얻었다고 좋아했습니다만 그 또한 답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굳게 믿었던 자기 생각을 손바닥 뒤집듯 엎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통곡하듯 후회하기도 하면서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지만 여전히 사랑은 애물단지 인 듯합니다.

  
81   [462]노작 교육  용인춘추 14·06·02 4205 532
80   [461] 구겨진 휴지조각속의 기억들: 나는 누구인가?  용인춘추 14·05·12 2887 504
79   [460]4월의 노래  용인춘추 14·04·21 3685 520
78   [459] 세대간 계승으로서의 한문  용인춘추 14·04·12 3163 496
77   [458] 지난 대학시절을 후회하면서  용인춘추 14·03·28 2966 515
76   [457] ‘별에서 온 그대’ - 한류의 새로운 바람  용인춘추 14·03·17 2976 474
75   [456] ‘응답하라 2013’ 대학생들이여  용인춘추 13·12·12 2014 402
74   [455] 뇌건강에 좋은 음식  용인춘추 13·11·24 1994 397
73   [454] 국민건강, 생활체육 활성화에 주목하자  용인춘추 13·11·10 1869 436
72   [453] ‘쓸모없는’ 잉여가 아닌 ‘잉여로운’ 자들이 꿈꾸는 세상을 기다리며  용인춘추 13·11·05 1825 437
71   [452] 시험제도에 대한 단상  용인춘추 13·11·05 1976 486
70   [451] 지속가능한 개발  용인춘추 13·11·05 1864 398
69   [450] 오늘날 대학생에게 필요한 학문의 자세  용인춘추 13·11·05 2082 446
68   [449] 역사적 반추를 통한 ‘사회안전망’으로서 경호(警護)  용인춘추 13·11·05 1843 379
67   [448] 희망! ‘창조캠퍼스’ 만들기  용인춘추 13·11·02 1851 485
66   [447] 왕상무의 자존감  용인춘추 13·10·31 1845 488
65   [446] 정보 홍수 시대의 서동요  용인춘추 13·09·13 2134 457
64   [445] 응답하라! 2013  용인춘추 13·04·30 2145 404
  [444] 늑대와 여우  용인춘추 13·03·31 2485 433
62   [443] 잔설과 오래된 미래  용인춘추 13·03·19 2241 473
1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