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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 정보 홍수 시대의 서동요
 용인춘추  | 2013·09·13 15:37 | HIT : 2,137 | VOTE : 458

 현대는 정보화 시대이고 우리는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바른 정보 판단의 중요성도 높아가고 있다. 즉,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정보가 바른 것인지, 아니면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동요를 통해 인터넷에 쏟아지고 있는 정보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똑같은 주제의 서동요지만 서동요는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각자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역사학자들과 일반 대중의 인식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일반인들의 경우에도 각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서동요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다. 그것은 서동요에 대한 정보의 양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동요에 따르면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선화공주가 서동을 사랑하여 밤이면 남몰래 서동의 방으로 밀회를 하러 간다는 내용으로 노래를 지어 신라 전역에 퍼뜨렸다고 한다. 노래로 거짓 소문을 퍼뜨려 공주를 곤경에 빠지게 해서 궁궐에서 쫓겨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선화공주가 궁궐에서 쫓겨나자 서동은 선화공주와 백제에서 결혼을 했다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이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이야기에 역사적 왜곡과 음모가 개입되었다는 여러 가지 정황 들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서동요는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을 폄하하기 위해 지어낸 거짓이라는 주장이다. 서동요는 삼국유사 제2권에 기록된 내용으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밤이 되면 남몰래 서동 방을 드나든다는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동요에 의하면 서동은 과부인 어머니와 마를 캐며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서동요를 지어쫓겨난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 한 후 선화공주에 의해 마를 캐던 곳에 쌓여 있던 노란 덩어리 들이 황금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이 황금을 신라 진평왕에게 보냄으로써 진평왕에게 인정받아 서동이 백제의 왕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왕을 신라왕이 세운 듯한 느낌의 구성이다. 왕비가 된 선화공주는 어느 날 사자사로 가는 길에 용화산 아래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난 것을 본 후 그곳에 절을 지을 것을 무왕에게 요청했고 지명법사의 신통력으로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은다음 이름을 미륵사(彌勒寺)라 했다한다. 그런데 이것이 역사왜곡의 단서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KBS1에서 방영한‘KBS역사추적'에 의하면 익산 미륵사지 판석문에서는 선화공주와 관련된 어떤 유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무왕이 설화대로 선화공주와 결혼을 했다면 선화공주의 요청에 의해 건립된 미륵사 유물에서 선화공주와 관련된 유품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같은 사학계의 주장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미륵사지 석탑 내 ‘금제사리봉안기’로 인해 한층 더 사실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조사 결과,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백제 말기 시대상황에서 볼 때 적국인 신라의 공주가 무왕의 왕비가 될 수 있었을 지에 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문서에 대한 판독 결과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의 딸인 것으로 나타난 점에 비춰 설화 자체가 사실이 아닐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백제 성왕(554년)이 신라군에 붙잡혀 살해 당 한 후 더욱 격하게 전개되는 백제와 신라 간 전투 상황에서 과연 양국 간의 결혼이 가능하겠냐”는 말도 곁들였다. 서동요 설화가 기록된 삼국유사를 기록한 일연은 경주출신으로 신라계이고, 삼국사기를 기록한 김부식 또한 신라계이다. 신라와 백제 간에 맺어졌던 나제동맹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지금의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의 배신행위를 응징하기 위해 백제 성왕 때부터 시작된 신라에 대한 공격은 무왕 때 최고조에 달한다. 무왕은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공격을 감행한 왕이다. 그러니 신라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왕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백제의 무왕을 여자 치마꼬리나 붙잡기 위해 적국을 넘나들었던 그런 왕으로 폄하 했을 것이라는 것이 최근의 주장인 것이다. 타락한 백제왕으로 기록된 의자왕의 삼천 궁녀는 그 좁은 궁내에서 3000명의 궁녀가 살 수도 없었고 있을 곳도 없었다는 여러 사학자들의 고증에 의해 궁내에서 살던 여인들로 현재 바뀌어 기록되어 있다. 만일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지어낸 허구라면 언젠가는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이 권력일 수도 있고, 돈일수도 있고, 지위일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소문이라는 것이다. 소문은 형체가 없고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기에 우리가 무관심하게 그리고 생각 없이 받아들여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그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인 것도, 백제의자왕이 방탕한 왕으로만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되었던 것도 모두 소문의 진상을 확인할 수 없었던 정보 부재의 민초들이 겪은 씁쓸한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잘못된 정보와 소문이 정치판을 흔들고 나라를 흔들고 한 개인을 파멸로 몰아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소문을 퍼뜨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새로운 서동요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이다. 따라서 각종 매체를 통해 또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문이 있을 때마다 한번쯤은 진위를 의심을 해보고 비판해 보는 것도 보이지 않는 엄청난 소문의 손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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