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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 시험제도에 대한 단상
 용인춘추  | 2013·11·05 02:50 | HIT : 1,680 | VOTE : 402

 

맑고 청명한 가을, 높아지는 하늘을 보며 선선한 바람과 더불어 미루어두었던 책이나 실컷 읽고 싶은 계절이다. 그런데 이 좋은 날 대한민국 학생들은 누구나 얼굴을 찡그리고 깊은 한숨과 더불어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 시험 때문이다. 하필 중간고사가 이때에 걸렸을까. 왜 시험을 봐야 하는 걸까. 시험 외에 보다 즐거운 대안은 없는 것인가?

내 경우를 보면 초등학교 때 매월 일제고사를 보았다. 중고등학교 때도 중간고사, 기말고사 외에도 교육부 주관의 전국 시험, 지방 교육청 주관의 시험 등 숱하게 많은 시험을 치렀다. 대학교 때도 시험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다 리포트로 중간시험을 대체해주는 교수님을 만나면 아주아주 감사했다. 내 기억으로 무슨 시험이 나와도 적당히 답안을 쓰고 나올 정도의 구라가 갖추어진 것은 대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때 부터였던 듯하다. 나는 사회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좀 더 일렀을지도 모른다.

시험제도를 처음 발명한 곳은 중국이다. 한나라 때 중국 인구는 5천만을 넘었는데, 이를 다스리기 위해 많은 관리가 필요했다. 중요한 직위는 황제가 측근이나 귀족 가운데서 직접 임명하였으며 일반 관리들은 효렴(孝廉)의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오늘날 선거의 어원이기도 하다. 효도를 잘하고 청렴한 사람을 추천을 받아 지방관으로 임명하고 한자 실력이 뛰어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중앙관료로 진출시켰다. 한자를 9천 자 이상 알면 오늘날로 치면 차관급 이상의 벼슬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효성스럽고 청렴결백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고급관료로 키워 집안을 빛내는 것이 모든 가문들의 꿈이었기 때문에 자기 집안의 자제를 추천하기 위한 온갖 비리가 생겨났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이것이 시험제도를 탄생시킨 이유이다. 시험을 치르면 객관적으로 사람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한나라 무제가 어질고 똑똑한 사람을 초빙하기 위해 친히 동중서(董仲舒)에게 책문을 한 것을 시험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를 공과(貢科)라고 부르는데, 필기시험은 아니었다.

위진 시대에 조조는 사람의 성품을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까지 9등급으로 나누어 관리를 차등 임명하는 이른바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가세와 도덕과 재능을 주요 표준으로 삼았는데 가문의 힘이 크게 작용하여 객관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객관성을 위해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을 필기시험을 통해 선발하자는 방안이 마련된 것은 당나라 때이다. 이것이 과거제다. 처음 과거는 명경과와 진사과로 나누어졌는데, 명경과는 경전을 외워서 치르는 암기력 테스트이고 진사과는 필기시험을 치러 창의력과 판단력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암송은 쉽게 비리를 낳기 때문에 곧 폐지되었으며 필기시험이 관료선발의 핵심이 된 것은 송나라 때부터이다. 컨닝 등 많은 부정행위가 발생하고 채점에서도 부당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보완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비교적 완벽한 필기시험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고시는 모두 이 유산이다.

중국의 오랜 시험경험을 영국은 1832년에 배워갔고 1870년 법령으로 필기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였다. 미국은 1950년에 이르러서야 필기시험을 치러서 지방 관리들을 선발하였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시험제도에는 큰 단점이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면 채점이 공정해야 하고 그러려면 모범답안이 있어야 한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모범답안만을 공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주자학으로 유명한 주희는 이것이 잘못되었다면서 모범답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간신히 과거에 합격하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나중에 명나라와 조선에서는 오직 주희의 경전해석이 모범답안이 되었다. 관료가 되기 위한 모범답안이 되는 학문을 관학(官學)이라 부른다. 관학이 되면 학문은 생명력을 잃는다. 오늘날 고시의 필수과목인 법학이 생명력을 잃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객관적 평가를 위해 시험을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모범답안만을 찾는 틀에 매인 시험제도는 결국 학문의 죽음을 부른다. 기억력 외에도 창의력과 판단력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시험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영국은 시험제도를 늦게 배웠지만 우리보다 훨씬 나은 대입시험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관료선발도 잘하고 있다. 중간고사를 다양하게 보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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