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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쓸모없는’ 잉여가 아닌 ‘잉여로운’ 자들이 꿈꾸는 세상을 기다리며
 용인춘추  | 2013·11·05 03:07 | HIT : 1,796 | VOTE : 427

지난 102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서울에 거주하는 20~30대 미혼 남녀 10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이들 4명중 한명이 취업, 구직 등에서 겪는 좌절감으로 인해 자신들을 잉여세대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잉여라는 말은 사전적으로는 쓰고 난 후 남은 것이라는 뜻으로 예전에는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측면, 잉여가치라는 표현으로 활용되고는 하였으며 흔히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잉여라는 표현이 인터넷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연예프로그램에서 방청객으로 참가한 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루저라는 표현을 써서 한때 인터넷에서 젊은 남성들의 분노를 일으켰었던 해프닝을 기억한다. 그런데 몇 주 전 신문에서 잉여세대관련한 설문 결과를 보면서 이러한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감수성이 어디서부터 발원한 것일까를 곰곰이 되짚어 생각하다 보니 나의 판단과 기억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당시에는 이 루저라는 단어의 무게나 비참함을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단지 해프닝 수준으로 치부해 버렸을 수 있다.

그 무렵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하릴없는 백수들의 일상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어느 가수의 노래가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세대 간의 갈등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 <88만원세대>라는 책이 서점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었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라는 유행어가 등장했고, 취업난이 가중된 요즘에는 취업까지 포기한다 하여 사포세대라는 용어로 진화했다. 그러던 것이 쓰고 남은 나머지라는 뜻으로 쓰이던 잉여라는 단어를 언제부터 청춘들이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냉소적으로 지칭하면서 잉여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어느 시대이건 청춘에 대한 담론은 늘 풍부하였고 그들이 애기하는 현실과 미래가 항상 희망적이고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불안과 패배주의가 지배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전하는 선배들의 메시지 또한 위로와 자성을 동반하며 이들 세대의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많다. 과열된 입시경쟁과 등록금 문제, 취업난과 스펙쌓기와 같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는 청춘들을 위로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의 힐링류의 책들이 최근 서점가를 휩쓸었었다. 그 이전에 앞서 언급했던 <88만원세대>의 저자들은 7·80년대 급속한 성장과 90년대 이후 민주화를 이룩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된 경제를 성취했었던 지금 2·30대의 아버지세대들이 IMF이후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경제 질서에 한국 경제가 편입되면서 생존을 위하여 이제는 자식 세대의 기회를 착취하게 되는 인질경제 시대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을 유예하고 부모에게 기생하게 된 지금의 루저또는 잉여스러운청춘세대와 갈등을 하게 되었다는 통렬한 비판으로 큰 화제를 만들었었다. 그러나 취업난이나 무한경쟁에서 내몰린 사회적 열패감에 휩싸인 20대의 문제를 단순히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로 보고, 이미 성장이 멈춰버린 세계경제 틀 안에서는 체제의 개편 없이는 이러한 착취적인 구조를 극복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성세대의 각성과 젊은 당사자들 간의 상호 연대를 통해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아야 할 것이라는 담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책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는 듯하다. 사실 패배주의에 휩싸인 무기력한 20대를 기성세대는 결코 외면할 수도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는 미래가 없는 사회를 의미하고 조만간 체제의 전복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동반하기에, 현 체제의 유지를 위해 미래 시대를 저당 잡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문제를 더 다각적이고 심도 있게 접근하고 해결책을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배들의 걱정과는 달리 당사자인 잉여세대들은 전혀 심각해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유쾌해 보일 때도 있어서 이 모습이 참 흥미롭다. 이들은 자신들을 잉여라고 쿨하게 인정하며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고 잉여짓을 통해 만들어낸 다양한 잉여콘텐츠(다른사람들이 보기에는 웃기지도 않고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를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자신들끼리 공유해가며 낄낄거리며 즐겁게 받아들인다. 잉여문화의 도화선이라고 하는 디시인사이드웃긴대학’, ‘잉여닷컴등의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고, ‘월간 잉여와 같이 사이버 공간을 떠나 오프라인에서 잡지를 발간하기도 하며, ‘나는 잉여다라는 타이틀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을 하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병맛(병신 같은 맛) 웹툰시리즈는 투박하고 단순한 그림체와 함량 미달에 무식해 보이는 주인공들이 그려내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들은 전혀 심각하지도 않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거나 누구를 계몽 또는 변화시키려는 의도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자기 비하와 독설, 분노와 답답함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놀이로써 이를 즐기면서 역설적인 안도감을 가지기도 하고 나아가 그들끼리 연대감을 생성해 내기도 하는 듯하다. 아버지세대의 노력으로 이룩해낸 풍요로움이 또 다른 결핍을 낳게 된 이 기괴한 시대에서 그들은 아버지세대와는 다른 자유롭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익힌 감수성과 언어로 소통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아저씨>에서 내일만 보고 사는 너희들은 오늘만 사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 주인공 남자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성장과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늘의 편안함을 뒤로하고 끊임없는 경쟁과 노력으로 청춘을 보낸 아버지세대들보다 꿈이나 희망과 같은 미래 가치를 외면하고 오히려 오늘 하루, 현실을 살아가며 지금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더 많은 생산을 통해 잉여를 양산해 내기보다는 지금 가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응용하고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즐거움과 문화를 창조해내는 지금 20대들의 에너지가 더 강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섣부른 위로나 침통한 자성으로 그들을 걱정스럽게만 바라볼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들의 아픈 현실이 결코 그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잉여로운몸짓을 유쾌하게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좀 더 빨리 실현되기를 같이 노력해 보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의미있고 소중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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